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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모노카타리
처음 접한 건 학생시절 해적판으로 나온 만화책이었습니다. 해적판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헤이안 시대에 황자로 태어나 많은 이들과 사랑을 하는 얘기로 기억합니다. 주인공인 황자가 유배지에서 돌아오는 부분까지만 읽었더랬지요. 당시는 일본 만화책이 잘 들어오던 때가 아니어서 해적판 만화책은 이름이나 설정 등을 우리나라 식으로 바꾸곤 했는데, 워낙 일본!! 이라고 외치는 내용이었던 지라 해적판도 왜곡이 좀 덜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의 내용이 무척 궁금했지만, 만화책이니 작가가 그리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더 보고 싶지만 알 수는 없는.. 그런 책으로 가슴에 남았는데, 언젠가 겐지 모노카타리라는 일본 고전 소설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겐지로 격하된 황자의 사랑, 삶에 대한 이야기. 세세한 얘기를 듣는 순간 아-! 깨달음을 얻었죠. 그때 그 만화구나.. 라는.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그 책이 판매중인 걸 알게 되었고, 마침내 소원을 풀었습니다.
야마토 와키의 『 겐지 이야기 - 아사키유메미시 』
겐지
그는 황자로 태어났지만, 겐지라는 성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일본 황족은 성이 없습니다. 성을 가지는 것은 곧 평민이 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높은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겐지와 그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던 황제는 겐지가 보다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신하로 격하시키고 맙니다. 어머니의 집안이 탄탄하지 못해 마땅한 후견인이 없었고, 후견인 없는 황족은 평민보다 못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할머니까지 여의고 궐에 홀로 돌아온 겐지는 아버지의 젊은 후궁과의 사랑에 빠지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은 겐지에게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게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듯 첫사랑을 잊지 못하며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겐지. 짧지 않은 생 동안 다양한 행태, 다양한 사랑을 할 순 있었지만, 손 안에 든 사랑은 끝내 놓치고 맙니다.
그림1. 히카루 겐지
겐지 모노카타리에 대해 막연한 갈증만을 느끼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좀 의문이었습니다. 사랑과 사랑과 사랑 이야기.. 내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관심이 가는 것이 왜일까.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
결국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한 쌍의 커플 결말을 보고픈 기대감?
그저.. 다 보지 못한 만화책을 끝내고 싶은 단순 집착?
마지막 권을 덮고 나니 겐지의 일대기가 더 이상 사랑이야기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 방대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는 겐지의 일생에 녹아 들며 인간의 결핍과 동경, 질시, 야심, 아집, 만족을 거부하는 어리석음과 자기파괴,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깨달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림2. 겐지와 어린 시절의 무라사키, 즐거운 한 때1
* 어릴 적부터 보살펴온 무라사키는 겐지가 가장 사랑하는 이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는 결국 자신으로 인해 무라사키를 잃게 됩니다.
그림3. 겐지와 어린 시절의 무라사키, 즐거운 한 때2
비록 그림이기에 깊이를 느끼기엔 부족했지만, 덕분에 당시 교토를 누볐을 듯한 의상과 마차, 그들이 향유했을 놀이들이 머릿속에 그릴 듯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광경을 떠올리며 활자의 세계에서 겐지가 보여주는 군상에 빠져볼 참입니다.
그러고보면.. 사람은.. 참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네요.
그저, 시간만, 주변 환경만, 나라만.. 달라질 뿐인 듯 합니다.
그림4. 겐지의 첫사랑 후지쓰보 중궁
* 어머니를 닮은 후지쓰보 중궁은 아버지의 후궁
첫사랑을 잊지 못하던 겐지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고 황제의 사후 둘을 지키기 위해 출가를 합니다.
여성의 출가의 상징으로 수계를 했네요.
그림5. 겐지의 부인 무라사키
* 후지쓰보 중궁의 조카로 그녀를 닮은 무라사키는
겐지의 딸이자, 누이이자, 아내가 되어 그의 유일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이도 겐지를 잡아둘 수는 없었지요.
*** 그림은 야마코 와키의 겐지이야기 - 아사키유메미시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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